안성시참전경찰유공자회 최봉증 회장 자서전 발간

죽음의 순간을 수없이 넘나들던 젊은 시절, 혼란한 사회상을 알게 하는 역사서

 참전경찰유공자회 안성시지회 최봉증 회장이 최근 90여 평생을 걸어온 인생살이 전부를 담은 색다른 자서전을 발간했다.

 해방후 남과 북으로 갈라져 극도적 이념 대립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경찰에 입문했고, 북한이 6.25 기습남침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전투경찰로 참전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최봉증 회장의 젊은 시절은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최봉증 회장의 자서전은 최 회장 자신의 삶의 과정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 정치상황을 알게 하는 역사서며,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엿볼 수 있는 교과서라고 볼 수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최 회장은 자서전(自敍傳)을 발간하며 나의 구십여년 동안 걸어온 지난날의 발자취를 감히 자서전으로 엮어 세상에 내 놓게 됨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영광으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결코 걸어온 길이 평탄하고 화려했던 길만은 아니였든거 같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젊은 시절이 주마등처럼 이 수간에도 머릿속을 스치곤 해서 지금도 깜짝깜짝 놀랄때가 많다.

 한 때는 큰 꿈을 안고 일본에 살고계신 큰 아버지 주선으로 동경시내 중학을 졸업 한 후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한지 2년도 안 돼 당시 대동아 전쟁 종말기라 매일 같이 미군의 폭격으로 하루아침에 그 넓은 동경 시가지가 불바다로 또 초토화 되는 바람에 전 시가지 건물들은 전소되고 수천명의 사망자들이 발생했고, 우리가 살던 집도 결국 전화로 전소되어 같이 살던 가족들도 행방불명이 되는 와중에 구사일생 나만이 살아남아 거리에 흩어진 시체를 넘어 다니며 가족들을 사방으로 찾아 다녔지만 가족의 생사를 확인 못한 가운데 조국 광복을 맞게 됨에 따라 동경살이 6년만에 고통만 안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몇 년 후 뜻한바 있어 경찰에 지원, 지금 이북에 있는 개성 경찰학에서 소정의 교육을 마치고 초임지인 황해도 백천 경찰서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경찰서 건물은 유명했던 백천온천 건물을 임시로 사용했는데 백천 지구는 38선 최전방으로 남북간의 충돌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으로 어느 날 심야에 북한군이 급습했고, 교전 끝에 경찰서 건물은 전소되고 몇 명의 경찰동료의 피해를 입는 참상 속에서도 우리들은 굳건히 백천을 지켰다.

 이렇게 열악한 무기 체계 속에서 굳건히 지켜왔으나 상상도 못한 6.25 불법남침의 전쟁으로 아무런 전쟁 준비도 없던 아군의 전황이 시시각각 불리해 결국 개별적으로 후퇴명령이 떨어졌다.

 허나 백천 지역은 지리상으로 육로 길은 단 한 곳 뿐인데 예성강 다리를 건너 남하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예성강 다리를 적이 계획적으로 폭파 하는 바람에 우리 경찰은 말 그대로 독안에 갇힌 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탈출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가까운 강화도로 건너가는 길 밖에 없음을 알고 야음타 벽란 포구를 찾아갔지만 포구에는 정박 중인 배들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절망했다.

 전황이 급박했고 조바심하며 주위를 살피다 마침 한 곳에 수리를 하고 있는 작은 배 한척을 발견하여 즉시 주인을 찾아 빨리 강화도로 건너가자고 부탁했으나 주인은 이리저리 변명을 내세우며 말을 듣지 않았다.

 인민군은 점차 가까워져왔고 마음은 점차 조급해짐에 따라 소중한 고가 손목시계를 풀어 배 주인에게 쥐어주며 애원했더니 그때서야 허락받아 배에 올라탔으나 배안은 물이 스며들어 철모를 벗어 물을 퍼내며 10여분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포구에 도착한 인민군이 우리 쪽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사선을 넘을 수 있었고 강화도에 도착,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그 후 백천 지역을 못 벗어난 동료 경찰관들은 적에게 잡혀 처형당했다는 끔찍하고 안타까운 소문에 며칠 밤을 혼자 괴로워해야 했다.

 생각하니 차고 있던 손목시계 하나가 나의 생명과 바꾼 것으로 당시 포구에서 10여분만 지체 했으면 나도 그들에게 잡혀 죽었을 것으로 지금도 되돌아보면 온몸이 쭈뼛해진다.

 인천경찰서에 집결한 백천 경찰들은 208 전투 경찰로 재편되어 용인지구와 경북 영천 지구의 치열한 전선에 참전했다 그 후 휴전이 되면서 고향인 안성경찰서로 발령받고 16개월 소집영장을 받고 논산 훈련소의 훈련과정을 마치고 수도사단 헌병중대에서 4년간 복무 하다가 만기제대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2년 후 지방행정 공무원 공채로 35년간 근무하다가 미양면장 6년 활동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후 현재 인생의 마지막 봉사활동으로 생각하고 참전 국가유공자 재향경우회 안성시참전경찰 경우 회장으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최봉증 회장은 이 자서전은 내가 90여 평생을 걸어온 인생살이 전부다면서 기술하다보니 불충분한 점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 자서전을 이해하기 좋게 하려고 삼단으로 구분했는데 첫째는 나의 지나온 발자취 두 번째는 평생 있었던 특히 활동사항 세 번째는 사진으로 보는 사진첩을 배치해 보기 좋게 하려고 애썼지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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