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농경사회의 시대상 회고

최봉증

옛 농경사회의 시대상 회고

 

안성6.25참전경찰국가유공자회

회장 최봉증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강점기의 폭정과 약탈을 당했던 약소민족의 비통한 설움과 당시 절박했던 실정은 우리의 역사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북한군의 기습침략으로 예기치 못한 동족살생이라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됐다.

 적화야욕에 사로잡힌 북한군의 625불법 기습으로 아무런 전쟁 준비도 갖추지 못한 우리로서는 단시일 내에 전국토의 70% 이상 점령당했던 절박한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 우방국의 참전으로 잃었던 국토를 회복했으나 전쟁으로 인한 인적, 물적의 피해는 엄청났으며 결국 휴전으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불행한 전쟁으로 기록됐다.

 1950년대 당시대는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빈부격차가 너무나 커 없는 자들은 조반석죽마저 어려워 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며, 해마다 되풀이되는 4, 5월 보릿고개인 춘궁기가 되면 채 여물지 않은 보리를 훑어다가 솥에 볶아 죽을 쒀서 연명을 했다.

 그 시절의 비참한 참혹상은 전후 세대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 당시 농경사회에 유행어처럼 나돌던 말은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면 첫 인사가 “어르신 진지 잡수셨습니까?” 즉 식사를 하셨습니까? 라는 인사말은 식량부족으로 궁핍했던 가정이 많았기 때문에 나온 농경사회의 서글픈 시대상이다.

 그 당시 농촌에서는 소작 제도로 부자들의 농경지를 빌려 땀흘려 경작한 후 가을 추수기에 생산량의 60%(4:6)를 토지주에게 상환하는 불리한 여건 속 영농을 해왔다. 곡식을 상환한 뒤 먹을 것이 부족해 산나물을 뜯어다 죽을 쒀서 겨우겨우 연명하는 가정이 많았다.

 그나마 소작농을 못하는 가정은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할 수 있는 일은 부잣집에 가서 1년간 힘든 머슴살이를 해야 했는데 뼈 빠지게 일해도 1년간 쌀 7가마, 일을 잘하는 머슴은 9가마까지 받았으나 부양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받을 새경 중 신새경 명목으로 미리 받다보니 다음해 또 머슴살이를 해야 하는 슬픈 악순환이 계속 됐다.

 또한 노령과 건강에 문제가 있어 머슴살이를 할 수 없는 사람은 부잣집에서 쌀 1말을 선수 물로 받고 그 대가로 남자는 3일, 여자의 경우 4일간 농사일을 해주어야 했고, 어느 가정에서는 부잣집에서 쌀 1가마를 장리조로 먹고 가을에 2가마를 곱채로 상환해야 하는 안타까운 사회분위기 속에서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 될 수밖에 없고, 이는 당시 농촌사회의 현실이었다.

 더욱이 없는 가정일수록 옛 흥부네 집처럼 자식을 무계획으로 많이 낳아 제대로 먹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들은 겨우 학교에 보내지만 딸은 학교 문턱도 가지 못해 여자들의 문맹자가 많은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가정이 몹시 어려운 집에서는 또 어린 딸을 밥 동냥까지 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저작권자 © 민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지역

더보기

안성의 모범지도자

더보기

포토뉴스&카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