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박정희 대통령이 박충훈 상공부 장관에게 질문을 던진다. “박 장관! 옛날엔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는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시오?” 박 장관은 잠시 생각한 다음 답변한다. “아무래도 공상농사(工商農士)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박 대통령은 사뭇 진지한 어조로 대꾸한다. “물론 공업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팔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난 상공농사(商工農士)이 맞다고 봐요.”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화이다. 근대화라는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수출주도형 공업정책에 매달린 박 대통령의 평소 고민이 묻어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자본도 기술도 태부족인 상태에서 잘 팔릴 만한 좋은 상품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게다가 무역 경험 자체가 거의 전무한 데 좋은 상품을 생산한다 해도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박 대통령은 기업가를 중시하고 우대한다.
기업가야말로 어떻게 하면 소비자 수요에 맞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낼지, 어떻게 하면 그런 상품을 세계시장에서 제값 받고 잘 팔 수 있을지 밤낮없이 궁리하니 말이다.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도 최대한 민간 기업가를 활용한다. 정부와 기업가는 강력하고 끈끈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다.
70년대 들어 기존의 노동집약적 경공업에서 기술자본집약적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체질을 바꾸면서 기업가의 역할이 더욱 증대된다. 중화학공업 주력 6대 업종 중 철강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계, 비철금속, 조선, 전자, 화학 모두 기업인에게 맡긴다. 그 때 그 주력 업종이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리 대표 산업이다.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SK 최종현, LG 구인회, 한화 김종희 등등 한강의 기적을 일군 기업가들에게 아무리 찬사를 보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이병철 회장이 창업한 삼성의 경우 이건희, 이재용으로 가업을 계승시키면서 반도체, LCD, 가전 등 전자부문에서 세계 일등기업으로 우뚝 선다. 오랫동안 일인자로 군림하던 일본의 소니를 물리친 쾌거이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계, 재계, 종교계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크다. 심지어 800여개 회원사를 둔 주한미국상공회의소까지 대통령에게 관련서한을 보냈다는 소식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은 미국과 한국에 최선의 경제적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물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이재용도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일반 형사법정에서도 ‘정상참작’이란 것이 있다. 세계 일등기업가 이재용에게 정상 참작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더구나 코로나사태로 경제상황이 너무나 어렵지 않은가? 이재용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속죄하면서 심기일전 기업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하루속히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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