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族魂의 통일

이장재

 한반도 분단 70년이 넘었어도 민족의 소원 통일이 왜 안 되는가? 그 해답은 분단의 원인에서 찾을 수 있다.

 분단의 근원은 대한제국 말 파벌싸움을 하다가 일본에 국권을 창탈 당하고, 일본 식민지 시대에서 허덕일 때 일본이 2차 대전을 일으켰으나,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왕의 항복으로 일본이 패전국이 된 것이 분단국 대상이 된 것이다.

 2차 대전 진행 중 1943. 11. 27. 발표한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을 식민 상태를 감鑑해서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시키는 문제 외 구체적인 결정은 하지 않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45. 12 .15~27.까지 미국, 영국, 소련 3개국 외상이 모스코바 회의에서 패전국 일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해서 최장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4개국 신탁통치를 결정하고 미 소 주둔군은 2주일 내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결정을 3개국에서 동시 발표를 하자 국내 여론이 들끓어 민주진영은 적극 반대하는데 공산 진영은 처음에 반대하다가 곧 태도를 바꿔 찬성으로 돌변했다.

 모스코바 협정에 따라 1946. 1. 16.~2.6. 미 소 주둔군 대표회의에서 양측은 각 5명씩 10명의 미소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국 측 대표는 육군소장 Arnold를 소련 측 대표는 육군중장 Stikov가 2월 20일 서울 덕수궁에서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었다.

 임시정부의 한국 측 대표 참석 범위를 놓고 소련은 신탁통치 반대세력은 제외하고 찬성 측만 참석을 요구하였고 미국 측은 반대, 찬성 측 균등한 비율에 참여 주장을 하였는데 반대하는 소련 측 대표가 5월 5일 평양으로 철수하여 회담이 결렬되었다.

 그 후 미국 소련 양국 정부 협의로 1947. 5. 21. 서울에서 미소공동위원회의가 다시 열리었으나 소련 측이 반대세력 참여 배제를 고집하고, 끝내 회장 밖에서는 찬반 양대 세력 간에 유혈 투쟁이 발생하여 미국 정부는 한국문제를 UN에 제기를 결정하였고, UN에서 결정되는 10. 8.까지 공동위원회는 중단되었다.

 1947. 10. 19. 유엔총회는 한국문제 토의를 시작하였고 21일 미소공동위원회 소련 측 대표는 평양으로 철수했다. 1947. 11. 14. 유엔총회는 한국의 독립 정부 수립을 돕기 위한 UN은 한국 임시정부 수립 지원단 파견을 결정하여 1948. 1. 8. 유엔감시단이 서울에 도착하였고 소련 측은 김일성 집단과 합세하여 38도선 북쪽 진입을 강력히 반대했다.

 2월에 유엔총회는 투표 가능 지역에만 총선거실시를 결의하여 1948. 5. 10. 총선거일로 결정하자 북한 김일성은 적극 반대하고 남한 남로당에게 2. 8. 전국에 총선거 반대 시위를 독려하여 대구에서 반대 시위가 있었고, 제주 4. 3. 사건,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일성은 총선거 반대를 위해 평양에서 민족 대표 회의를 열어 반대하였지만 5. 10. 투표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198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1948. 5. 31. 제헌국회를 개회하였고 6. 10. 국회법이 통과되고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이라 정했다. 1948. 7. 14. 정부조직법 통과, 7. 17. 헌법 제정을 선포하고 7. 20.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을 선출하고 1948. 8. 15. 대한민국 건국을 만방에 선포했다. 8월 15일 0시에 John KHodge 군정 사령관이 미 군정 종식을 선포했다.

 1948. 9. 13. 정오를 기해 대한민국 행정 업무가 시작되었다. 미군은 1949 봄부터 철수를 시작하여 6월에 군사 고문단만 남기고 철수가 완료되었다. 1948. 12. 9. 유엔총회는 찬성 46 반대 6으로 대한민국 건국을 승인했다.

 대한민국을 남한 단독정부라 말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미국 제의로 유엔결의를 거쳐 유엔 감독하에 총선거를 실시해서 정부가 수립되어 유엔총회 승인을 받은 한반도에 유일한 국가로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규정했다. 북한이 9. 9 수립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국제 승인을 받지 못한 불법집단임이 명확하다.

 이상의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더듬어 보면 한반도는 분단된 것이 아니라 김일성 공산단 집단이 소련에 이용당해 억지로 민족을 갈라놓았음이 확실하다.

 군정 3년간 소련은 공산단 세력 확장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인민군 20만 명을 양성해서 중무장시켜 미군 철수 1년이 지나 1950. 6. 25. 불법 남침 전쟁을 일으켰다. 따라서 미군이 통일을 방해하였다는 것은 억지 주장이다.

 6. 25. 전쟁을 일으켜 300여만 명에 사망자와 1000만 이산가족의 비극을 남기고도 남침 야욕을 버리지 않고 70년간 온갖 만행을 지속하여 핵폭탄을 만들어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김일성 일가는 원명 김성주가 가짜 백두혈통 김일성으로 둔갑한 악의 집단이다.

 북한 김일성은 통일을 방해하고 민족을 갈라놓은 죄인이다. 죄인의 후계자 김정은의 심리적 변화 없이는 한반도 통일은 영영 성취되지 않는다.

 한반도 통일은 정치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통일이 되는 길은 ‘민족혼의 통일’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비정상적인 집단과의 협상을 과감히 배제하고 UN 헌장과 국제 사법을 동원해서 악의 집단을 지구촌에서 완전히 퇴출하는 한편 북한 동포의 자유와 인권 보호에 적극 노력하면서 民族魂의 통일을 위해 각계각층의 동족이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민족 화합의 마당이 형성될 때 한반도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장재 약력

-안성 출생

-단국대 문리대 졸업

-건설부 기술훈련원 총무과장

-주식회자 일산 사장

-‘아시아 문예’ 수필 등단

-孝교육 지도사

-수필집 「절망에서 찾은 희망의 빛」

 

<저작권자 © 민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지역

더보기
"한의학 폄훼하고 한의사 말살하려는 대한의사협회 산하단체 해체하라"
보건복지부 산하 사단법인 대한의사협회가 한의사를 조직적으로 비방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나서 제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잘못된 정보를 통해 한의 진료를 선택하려는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만큼, 일방적으로 타 직역을 비하하며 궁극적으론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단체를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는 것.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대한의사협회 산하 한방대책특별위원회(이하 한특위) 해체에 관한 청원에 따르면, 한특위는 국가에서 인정한 국민건강을 돌보는 한의사의 활동을 제약하기 위한, 다른 이익집단엔 없는 단체로 조직적으로 한의사를 폄훼해 한의사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매해 거액의 예산을 배정받아 활동하고 있다. 청원에 따르면, 한특위는 초음파나 엑스레이 등을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에 대해 대법원의 승소판결이 내려지기도 하는 등 한의학의 현대화가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치부하며, '한방 무당'이라는 조롱과 비하를 일삼는 데다, 단순한 선전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반대하며, 초음파 의료기기업체가 한의사들에게 기계를 판매하지 않도록 갑질 행패를 부리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안성의 모범지도자

더보기

포토뉴스&카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