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보훈지청 강자연 실무관
5월의 화창한 날씨에 못 이겨 친구와 함께 무작정 길을 나섰다.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산책도 하고 생각도 정리할 심산이었다. 공원이 적당할 것 같아 인근에 있는 상록 공원으로 발길을 향했고, 마침 사람도 많지 않고 여유를 즐기기에 적당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있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깨끗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 나의 눈길을 끌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우연히 들른 이 곳은 다름 아닌 고등학교 때 많이 들었던 인물, 일제강점기의 농촌계몽가 최용신의 기념관이었다. 안산시에서 최용신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 2007년 11월 20일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지상 1층에는 최용신이 활동하던 ‘샘골강습소’를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해 놓았고 지하층에는 전시실과 영상실을 설치해 놓았다. 전시실에는 최용신의 건국훈장, 상록수 초판본, 국어교재 등 관련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최용신.. 그녀는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인물로, 식민지 수탈에 의해 피폐된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는 생각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녀는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1931년 10월 YWCA 파견교사로 경기도 화성군 샘골에 파견되었다. 그는 예배당을 빌려 한글ㆍ산술ㆍ재봉ㆍ수예ㆍ가사ㆍ노래공부ㆍ성경공부 등의 학습을 시작하였고, 헌신적 노력으로 현지 주민의 이해를 얻어낼 수 있었으며, 어려운 중에도 학원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YWCA와 현지 유지의 기금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34년부터 YWCA의 보조금이 끊어지고 학원의 운영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다방면의 노력을 강구하던 중 지나친 과로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 그때가 그녀의 나이 겨우 26세 때였다. 그 당시 여성이 활동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터인데, 그녀는 그 모든 역경을 딛고 꿋꿋하게 농촌계몽을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고 열정을 다했다. 그의 농촌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행적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常綠樹)』에서 실제화 되어 농촌운동의 귀감이 되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여성으로서 현대를 살아가기 힘들다는 한탄을 많이 하곤 했다. 하지만 최영신 기념관을 다녀오고 나니 상황을 탓할 것이 아니라, 더욱 힘든 상황에서 농촌계몽을 이끌어낸 최영신을 본받아 내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당시 최영신의 투지에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다. 우연처럼 들른 최용신 기념관. 그 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워왔고, 다가오는 현충시설을 맞아, 인근에 이러한 현충시설들이 또 있는지 검색하고 방문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마도 나는 그곳에서 또 다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