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진핑과 경쟁할 지도자인가? 안 상 정
2007년 3월 시진핑이 중국 최대 도시 상하이 당서기로 취임합니다. 불과 7개월 후에는 중앙당 제1서기로 영전하더니 9인으로 구성된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정치국의 상무위원까지 겸임합니다. 마치 혜성처럼 순식간에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서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때까지 시진핑은 지방행정직만 전전한 중앙정계에서는 생소한 인물이기에 세계의 이목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가 도대체 누구인지 집중합니다. 시진핑이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거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반면 공산혁명의 원로이며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의 아들로서 소위 태자당(太子黨)의 일원이라는 점이 많이 부각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시진핑은 여느 태자당과는 전혀 달리 아주 힘든 성장과정을 밟습니다. 불과 아홉살 때 부친이 마오쩌둥의 미움을 받아 숙청당한 것입니다. 더욱이 곧바로 닥친 문화혁명의 광풍까지 겹쳐 형언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게 됩니다. 10대 때 궁벽한 산골로 쫓겨나 무려 7년간 벼룩이 득실거리는 토굴에서 생활을 합니다. 반동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공산당 입당 심사에서 열 번이나 떨어집니다. 명문 칭화대에는 청강생 자격으로 들어가 각고의 노력 끝에 학위를 따냅니다. 그는 그토록 모진 고난을 오히려 훌륭한 교사로 삼는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시진핑이야말로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듯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감춘 채 참고 또 참으면서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는 과묵하고 겸손하며 절제력이 강합니다. 포용력이 큰데다 애민정신이 투철하고 재주보다는 덕을 중시합니다. 단결과 화합을 이끌어내는데 탁월한 ‘통합 리더십’의 소유자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대륙스타일’이라고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근래 G1 미국에서는 오바마가 재집권하고 G2 중국에서는 시진핑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때를 맞춘 듯이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며칠 후면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합니다. 그 지도자는 오바마, 시진핑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해야 합니다. 부디 그럴 만한 경륜과 식견과 소명, 3박자를 두루 갖춘 인물이기를 바랍니다. 3박자 중 어느 하나라도 낙제점이라면 정말 곤란합니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이번 대선에 달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