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시인·수필가 동원 정지웅

 

 우리는 우리의 생()을 아름답게 가꾸고 흐뭇하게 만들고 정성스럽게 다듬어 나가야 한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까? 행복의 집을 어떻게 지을까? 나는 세 가지의 원리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사랑이요, 둘째는 믿음이요, 셋째는 창조다.

 사랑과 믿음과 창조의 세 기초위에 행복한 인생의 집을 짓자. 미움과 불신과 나태 위에 생활의 집을 짓는다면 반드시 불행과 허무의 구덩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랑은 인생의 흐뭇한 향기다. 사랑은 인생의 따뜻한 햇볕이다. 우리의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랑이다. 하나에서 하나를 빼면 공이 된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어 보아라. 허무한 것이 되고 만다.

 인간은 애정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빵은 육체의 양식이요, 사랑은 정신의 양식이다. 우리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사랑을 먹어야 한다. ‘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이다라고 피히테는 말했다.

 사랑의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가정은 행복하고, 사랑의 햇살이 비치지 않는 가정은 불행하다. 부부간의 흐뭇한 사랑, 모녀간의 아름다운 정, 부자간의 두터운 사랑, 형제자매간의 정다운 사랑, 이러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희망과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인간에게는 정의 아름다움과 흐뭇함이 있기 때문에 괴로운 인생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에 대하여 따뜻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의 운명에 대하여 깊은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을 깊게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에게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아무도 나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해 주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책임을 느끼지 않고,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주는 것이 없을 때 나는 외롭고, 섭섭하고, 허무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누구든지 불행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를 힘써야 한다.

 내가 사랑의 주체(主體)가 되어 누구를 사랑하는 동시에 내가 사랑의 객체(客體)가 되어 누구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을 때 나의 존재와 생활은 무의미와 무가치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이 세상에 내어 던져진 불행한 존재가 되고 만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같고, 샘물이 다 말라버린 샘터와 같다. 우리의 생()에 빛을 주고, 향기를 주고, 기쁨을 주고, 보람을 주고, 의미를 주고, 가치를 주고, 힘을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 곧 사랑이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하여 살아간다. 사랑은 우리의 생활의 등뼈요, 기둥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사랑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기 공부를 힘써야한다사랑하기 공부란 무엇이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따뜻한 것이다.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그러하기를 힘쓰는 것이 사랑하기 공부다.

 주부는 가정의 운전자요, 관리자다. 한집안의 선장이요, 태양이다. 한가정의 행복의 열쇠, 번영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는가? 다름 아닌 주부다. 주부는 사랑의 선수(選手)가 되어야 한다. 사랑의 태양이 되어야한다. 한 가정의 여러 식구들에게 사랑의 햇살을 늘 보내어야 한다. 애정의 향기를 항상 발산해야한다. 주부의 말과 행동과 태도의 생각과 성격에 사랑의 따스한 햇볕이 배어 있어야한다.

 사랑은 인생의 위대한 가치요, 근본적인 가치요, 영원한 가치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절대로 행복 할 수 없다.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이다우리는 이 명제(命題)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마음의 밭에 먼저 사랑의 나무를 심자.

 둘째로 행복한 인생의 건설을 위하여 나는 믿음을 강조한다. 믿음은 나와 너 사이에 있어야 할 근본 질서다. 믿음은 신의요, 신뢰감이다.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믿을 수 있어야한다우리는 믿음의 토대위에 우리의 생활의 집을 짓고, 가정의 집을 설계해야한다. 믿음은 인간관계의 기본원리요, 협동생활의 근간(根幹)이다. 우리는 서로 믿기 때문에 같이 살 수 있고, 같이 일 할 수 있고, 같이 친할 수 있다. 서로 믿지 못할 때 우리는 같이 살아갈 수 없고, 같이 일할 수 없고, 같이 친해질 수 없다.

 믿음의 상실은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이다. 신뢰의 붕괴는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이다. 부부가 서로 믿지못하고, 부자간에 서로 불신하고, 모녀간에 서로 믿음이 없고, 형제자매간에 서로 신뢰가 없을 때, 그 가정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다. 불신은 불안과 불행의 원천이요, 믿음은 협동과 화목의 전제조건이다.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서로 믿으려면 속이지 않아야한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신의가 있어야한다. 정직은 인간의 가장 근본 되는 덕이다. 정직의 나무에 믿음과 꽃이 핀다. 내가 너를 속이고, 네가 나를 속일 때 나와 너 사이에 믿음은 무너진다. 세상에 믿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다. 행복한 가정을 건설하려면 먼저 믿음의 질서를 세워야한다.

 일찍이 공자는 무신불침(無信不立)의 철리(哲理)를 역설했다. 개인이건 가정이건 나라건 신의가 없으면 결코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인간 부도수표라는 불행한 낙인이 찍힐 때 그는 사회에서 설 땅이 없다. 우리는 모름지기 인간 보증수표가 되어야 한다. 서로 믿는 부부, 서로 신뢰하는 모녀, 서로 믿음이 두터운 부자, 서로 믿는 형제자매처럼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없다.

 한 가정에는 믿음의 맑은 공기가 가득차 있어야 한다. 치국(治國)의 근본은 제가에 있다고 하였다. 사회의 기본단위는 가정이다. 하나하나의 가정이 튼튼히 설 때 그 나라는 튼튼히 설 수 있다. 모든 가정이 허약할 때 그 사회는 허약해 질수밖에 없다. 튼튼한 가정을 세우는 근본이 무엇이나, 믿음의 원리요, 신의의 질서다. 모든 가정이 믿음의 토대위에 굳건히 서야한다. 이것이 치국의 근본이다. 굳건한 믿음의 가정을 건설하는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는가, 그 가정의 주부다.

 가정은 인생의 영원한 안식처다. 우리가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는 생활의 보금자리다. 우리의 몸과 마음의 즐거운 휴식처다. 가정에는 윤기가 있어야한다. 향기가 넘쳐야한다. 훈훈한 바람이 늘 불어야한다. 서로 간에 따뜻한 대화가 있어야한다. 깊은 이해심이 있어야한다. 서로 믿고 돕고, 아끼고, 감싸주어야 한다. 너그러운 관용의 정신으로 이해하고 협동해야한다.

 가정은 마음을 푹 놓고 살아가는 평화의 보금자리가 되어야한다. 가정은 하숙집과 같은 하우스(House)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답고 즐거운 홈(Home)이 되어야 한다사회에는 치열한 경쟁과 이해타산의 찬바람이 분다. 그러나 가정에는 사랑과 믿음과 기쁨의 봄바람이 언제나 훈훈하게 불어야한다.

 그러한 가정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어디서 생의 보람을 찾고, 어디서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가정의 행복을 창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는가? 주부가 쥐고 있다. 주부의 일거일동, 주부의 생각하는 것, 마음씨 쓰는 것, 움직이는 것 모두가 한 가정의 행복과 불행에 깊이 영향을 준다.

 주부는 맑은 눈동자와 따스한 미소와 정다운 말과, 너그러운 가슴과 부지런한 손발을 가져야한다. 이것이 바람직한 이상적 주부다. 사랑이니, 협동이니, 화목이니, 대화니, 희생이니, 봉사니 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덕이 모두 다 믿음과 신의의 토대위에서 비로서 가능하다. 신의와 믿음의 질서가 무너질 때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믿음은 행복한 가정 건설의 기초다.

 셋째로 나는 창조를 강조한다. 창조란 무엇이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가치, 새로운 행복, 새로운 질서, 새로운 생활을 만드는 것이다. 창조에는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다. 정원의 한 구석의 땅을 갈아 씨앗을 뿌린다.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난다.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잡초를 뽑고, 약을 뿌리고, 거름을 주면서 어린새싹을 정성껏 가꾸어 나간다. 튼튼한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힘차게 자라고, 잎이 무성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소담한 열매가 열린다. 거기에 흐뭇한 창조의 기쁨과 보람이 있다.

 한 포기의 꽃을 정성껏 가꾼다는 것은 하나의 보람된 창조의 행동이다. 정성스러운 노력에는 반드시 큰 보수가 따른다. 나무에 열매가 열리듯이 일에는 언제나 즐거움이 따른다.

 인간은 자기가 심는 것을 거둔다. 심지 않고 늘 거둘 수가 없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다. 보람 있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람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인생은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추는 허망한 향락의 놀이터가 아니다. 저마다 자기의 도리(道理)를 다하고 제자리에서 제구실을 다하는 창조의 일터다. 사람은 자기의 직분이 있고, 사명이 있고, 할 일이 있다. 그것을 완수할 때 무엇인가 이루었다는 성취와 만족감이 있고, 흐뭇한 행복감이 있다.

 행복은 창조의 나무에 열리는 보람된 열매다.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행복관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많이 창조하고, 보람된 일을 하는데 있다. 향락욕이나 소유욕의 만족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가치 있는 목표를 달성할 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행복의 핵심은 보람에 있다. 향락에는 일시적 흥분과 도취(陶醉)는 있어도 흐뭇한 보람은 없다.

 우리는 창조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야한다. 한 가정을 알뜰하게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거기에 창조의 기쁨이 있다. 자식을 정성껏 교육하여 훌륭한 인간을 만든다. 거기에 창조의 행복이 있다.

 서예를 배우고 익혀 자기의 천분(天分)을 표현하는 작품을 만든다. 거기에 창조의 보람이 있다. 화가는 한 폭의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인다. 조각가는 하나의 미술품을 제작하기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우리는 인생을 그런 자세와 태도로 살아야 한다. 창조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인가, 인생을 쉽게 살려는 안이한 태도를 우리는 버려야한다. 피땀을 흘려야만 성공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정열과 수고 없이 쌓아 올린 행복의 탑은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예술처럼 인생을 아름답게 살자, 예술처럼 인생을 정성스럽게 살자, 예술처럼 인생을 보람 있게 살자, 사랑과 믿음과 창조의 토대위에 행복의 탑을 쌓고, 생활의 집을 지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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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회 염종현 의장
염종현 경기도의회 의장이 26일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대한민국시도의장협의회 ‘전국 공항소음 대책 특별위원회’ 3차 정기회에 참석해 공항소음 피해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며, 특위 활동을 격려했다.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산하 ‘전국 공항소음 대책 특별위원회’는 전국 공항소음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지난해 6월 구성된 전국 광역의회 단위 위원회로, 이날 도의회를 찾아 3차 정기회를 열고 ‘공항소음 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 건의안 등을 논의했다. 염종현 의장은 이 자리에서 “제가 살고 있는 부천시도 공항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큰 지역이다. 과거에는 극심한 소음 탓에 인근 지역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하는 안타까운 사례를 목도한 바 있다”며 “공항소음과 관련 규제로 인한 피해는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조사와 데이터는 불충분하고, 현재의 법률과 지원 대책 또한 현실적인 피해를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국회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또 우리 광역의회는 광역의회대로 각자의 경로에서 최적의 대책을 찾고, 현실에 불부합한 규정들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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