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개국공신이자 명재상 을음은 지독히 인기가 없는 정치인입니다. 남는 곡식이란 곡식은 모조리 걷어 들이고 장정이란 장정은 모조리 군대에 징집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침략해온 말갈족을 격퇴하지만, 누구도 을음을 칭송하지 않습니다. 극심한 기근이 들어 국고를 풀라는 백성들의 요구가 하늘을 찌르지만, 을음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기근을 틈타 다시 침략해 온 말갈족을 다시 격퇴하지만, 역시 을음에 대한 원성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을음은 한술 더 뜹니다. 근본적인 안보책 이라며 힘겨운 백성들을 강제동원해 곳곳에 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를 바탕으로 낙랑과 말갈을 제압하고 마한을 정복합니다. 그래서야 백성들은 을음의 진면목을 깨닫게 됩니다. 을음은 온조왕에게 이렇게 충성스럽게 간언합니다. “ 참된 정치는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안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요즘 일부 정치인들이 초중학생 무상급식을 전면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눈앞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 공약이 될까 참으로 걱정이 큽니다. 2조원 가까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조달할지 합리적인 방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형편이 넉넉한 가정의 자녀의 밥값까지 국고로 내주자는 것은 사회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무상교육을 하고 있으니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언뜻 봐서는 그럴 듯 해보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급식은 학교교육과는 별개로 복지차원에서 운영하는 제도일 뿐입니다. 유럽36개국 중 34개국이 우리처럼 초중학교 무상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급식제도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고,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단 2개국(핀란드, 스웨덴)에 불과합니다. 무상급식을 받는 저소득층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적습니다. 그동안 꾸준한 개선을 통해 현재도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의 신원이 거의 노출되지 않습니다. 조만간 정부의 사회복지전산망을 통합 관리한다면 그런 위험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양식과 철학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작은 인기에 연연해 큰 국익을 그르쳐서는 안 됩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전체 복지예산을 어떻게 하면 아껴 효율적으로 쓸까 고민해야 옳습니다. 지금 당장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한다면 서민가정에 돌아갈 복지예산이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상급식은 나라 재정을 보아가며 점차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지금은 백제의 명재상 을음의 용기와 소신, 그리고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