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장 체험 학습을 앞둔 며칠 전 천안함 침몰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이 배가 암초에 부딪혔다. 배의 엔진 쪽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의 여러 가설을 제시할 때 전문가들이 유력한 가설로 제시한 것 중에는 북한의 어뢰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나는 이 가설을 듣자마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늘 교과서로만 배웠던 통일과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답답함과 더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마침 안보현장 체험 학습을 통해 평소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우리는 임진각에 갔다. 끊어진 선로위의 낡은 기차 한대를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포스터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 예전에 그 기차는 남과 북의 개념이 없이 한반도라는 하나의 나라를 달리던 것이었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북한에 갈 수 없음에 너무 아쉬웠다. 분명히 한 몸이었는데 허리띠를 졸라매고 상체와 하체로 나뉘어 이제는 서로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말이 되냔 말이다. 그 기차 옆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던 중국 관광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며 씁쓸한 미소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다음은 전진 부대에 있는 도라 전망대에 갔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군인의 설명을 들었다. 비무장 지대와 북한 공단의 모습들, 판문점에서 일어난 도끼 사건과 휴전선과 3.8선의 오해 등등 새로운 것을 알고 잘못된 지식을 고치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머지않아 나도 저 자리에 서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후에는 자율적으로 전망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비무장 지대를 보며 나무와 풀, 동물밖에 없는 그 지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모양의 국기를 서로 과시하듯 높이 걸어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자랑스러워야 할 국기가 그 순간만큼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마지막 장소인 제3땅굴을 향해 달렸다.
도착한 후 우리는 제3땅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978년10월17일 발견되었으며, 한 시간 동안 3만 명의 군인과 중화기들을 운반할 수 있는 규모의 땅굴이라고 한다. 땅굴을 판 목적은 북한의 남침인데 나중에 발각될 것을 대비하여 석탄 가루를 묻혀 채굴장으로 위장하는 북한의 이중성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는 땅굴에 들어갔다. 땅굴의 공간이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아서 허리를 숙이고 줄을 일렬로 맞춰서 들어갔다. 힘들었지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엇인가 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접 땅굴을 갔다가 나와서 생각해보니 이제는 북한의 불법남침이 와 닿았다.
그 동안 내가 남북문제에 관심이 너무 없었다. 소극적인 자세로 남의 일인듯 대책 없이 비판만 해왔던 것이다. 이번 체험 학습을 계기로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북한과 남한의 관계를 비극적으로만 생각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 아픔을 치료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식구들과 같이 방문을 했더라면 자칫 관광을 목적으로 돌아보았을 텐데, 이런 값진 경험을 하게 해주신 안성시 재향군인회 회장님을 비롯한 임직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