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운악산(雲嶽山)

睿堂 洪性圭

명산 운악산(雲嶽山)

문정공파 중앙종회장

睿堂 洪性圭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산163 소재 고찰 현등사(懸燈寺:031-585-0707)가 있는 운악산(雲嶽山)을 오르는 길의 수려한 경관의 어울림과 아슬아슬한 스릴 있는 트랙킹 코스가 곁들인 운악산 등산을 2013. 11. 23 고려대 김재곤(金在崑)교우와 정우종(鄭禹鍾)교우 홍성규(洪性圭)본인등 3명이 청량리역 4번출구로 나와 버스환승장 1번승강장에서 현등사행 1330-44 버스(요금은 편도 2,000원)를 타고 07:30 출발 1시간 40분만에 종점에 9:10에 도착 9:19부터 현등사를 향해 가벼운 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이 계획은 내가 가평군에 근무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나보고 운악산등산을 하자고 지난해 11.4 천마산행 이후 김재곤씨의 제의가 있었지만 나는 운악산이 높은 산이므로 위험성이 있고 힘든 코스라 가기가 좀 힘들지 않나 라고 생각되어 차일피일 미루어 왔는데 집요하게 챙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일 년이 지난 후 11.23 오늘에야 실현을 보게 된 것이다.

 운악산(雲嶽山)은 경기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해발 937.5m의 산으로 경기도 포천과 가평을 경계로 서 있다. 가는 길목에는 일주문을 거쳐 잘 정돈된 현등사 가는 길에 접어들었는데 이 길은 내가 1994년 가평군수로 있을 때 현등사 가는 길이 좁고 험해 차는 물론 보행도 위험한 곳이 많아 등산객들과 신도들의 안전보행과 林道用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도기계화 사단장(당시 사단장 김희상소장은 나의 경복고 후배 였슴)의 협조를 얻어 사단공병대의 장비와 인력을 지원받아 좁은 길을 넓히고 험한 길을 다듬고 하여 오늘의 길이 되었는데 내가 인사이동으로 경기도 국장으로 전보된 후 얼마 되지 않아 검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아 검찰의 조사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내용은 자연을 훼손하여 경관을 해쳤다는 “자연을 사랑하는 모임”의 고발에 따른 것으로 무혐의 처리로 종결된 일이 있었던 이 길을 20년 만에 다시 밟아 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고 보람되고 가슴이 뿌듯한 즐거움도 느껴졌다.

 가는 길목에는 백년폭포와 무우폭포의 시원스러운 풍경을 만나고 '민영환 암각바위'를 지나 깊게 구부러진 신록의 길을 오르다 보면 치마바위, 거북바위, 만경대등의 풍광이 병풍을 이루고 있는 곳이며 불이문과 백팔계단을 지나 힘겹게 절집에 닿으면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진다. 108계단은 108번뇌를 뜻하는 것으로 6근根(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으로 6진塵(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燭, 법法)을 대하니 제각각 호好(좋다), 오惡(나쁘다), 평등平等(좋지도 나쁘지도 않다)의 세가지가 부딪히며 18번뇌를 일으키고, 고苦(괴롭다), 락樂(즐겁다), 사捨(버리다)의 삼수가 18번뇌를 일으켜 36번뇌가 되고, 이는 다시 전생前生(과거), 금생今生(현재), 내생來生(미래)에 배하여 108번뇌가 된다고 한다. 운악산(937.5)은 송악산(489), 관악산(629), 감악산(675), 화학산(1468)과 더불어 경기도의 5악으로 불리우는 명산이다. 그리고 현등사는 강화 보문사, 관악산 연주암과 함께 경기도내 3대 기도도량으로 불리우는데 그중 제1의 사찰로 알려지고 있다. 사시사철의 풍광이 아름다우며, 그 중에서도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금강산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명산의 품격을 지닌 운악산의 7할 중턱에는 천년고찰이 자리 잡고 있으니 현등사이다. 현등사(懸燈寺) 오르는 길목에는 삼충단(三忠壇)이 있는데 이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체결로 자결을 택한 충신 3인(조병세, 최익현, 민영환)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이다.

 개울에 있는 바위 상부에는 구한말 시종무관 민영환(閔泳煥)선생이 기울어 가는 나라를 걱정하며 하늘을 보고 탄식하였다는 곳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민영환바위로 부르고 있다. 1시간만에 현등사에 도착하여 20년만에 시원한 약수를 한 바가지 떠 마시니 보약을 먹는 기분 이였다. 현등사는 한반도에 불교의 시작을 알렸던 신라 법흥왕14년(527년)에 불교를 공인한지 13년뒤 법흥왕27년(540년)에 세워진 천년고찰이다. 인도의 고승 마라아미(麻羅阿彌)가 신라에 들어 와서 불법을 전파하니 왕은 그를 가상히 여겨 운악산에 운악산사(雲嶽山寺)를 짓고 포교에 힘쓰도록 한 것이 현등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고려의 도읍을 송악산 아래로 정하고 세 곳에 약사도량을 세웠는데 동쪽의 기운이 약하여 이를 보완하고자 여러 곳을 다니다가 산세의 빼어남이 좋은 운악산에 이르러 절을 세우려 하니 이미 절터가 남아 있음을 보고 그 자리에 절집을 세운 것이 운악산사의 첫 중창이 된다고 한다. 현등사라는 이름은 고려 희종6년(1210년)에 들어서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에 의해서 이다. 지눌이 망일산 원통암(望日山 圓通庵)에 머물 때 운악산을 바라보니 삼일동안이나 빛을 발하고 있어 그곳을 찾아가니 관음전이 서 있었으며 그 옆 서쪽 바위 위에는 옥등(玉燈)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전각을 수습하여 세우면서 옥등이 걸려 있는 절집이라는 뜻의 현등사(懸燈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성종1년(1470년) 세종대왕의 8남인 영응대군의 부인 송씨가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는데, 1979년에 도난당하였던 것을 삼성문화재단에서 매입, 취득을 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2006년에 현등사로 모셔왔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다가 순조23년(1823년)에 관음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고, 다시 중창하여 번성하였고 한다. 그렇게 1500여년을 이어온 현등사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현재의 절집은 1961년부터 중창을 시작하여 세운 전각들이다. 지금도 현등사는 중창불사에 한창이다. 단청도 마무리 짓지 못한 전각들이 좁은 산비탈의 경사에 아슬 아슬 하게 선 모습들이다.

 운악산은 경기도의 동북 산간 지역에 위치한다. 북쪽에는 한북정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있고 남쪽에는 북한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다. 북쪽의 한북 정맥에는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1,468m)을 비롯해 응봉(1,436m), 촛대봉 등이 있고 조종천을 경계로 하여 명지산(1,267m), 매봉(927m), 수덕산(749m) 등이 별도의 산줄기를 이루며 뻗어있다. 운악산은 해발 937.5m로 기암과 봉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아름다워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워져 왔다. 주봉인 만경대를 중심으로 우람한 바위들이 봉우리마다 구름을 뚫고 솟아있고 골짜기마다 하늘을 가리는 활엽수림은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들어 만산홍엽을 이룬다. 4월 중순의 자목련, 5월경 진달래와 산목련이 계곡과 바위마다 수놓은 꽃길은 정말로 장관이다. 또한 중부지방의 5대 악산 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우리는 현등사에서 여러 시설물을 둘러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등산로를 따라 등산을 시작하여 코키리 바위- 절고개- 남근석바위를 쳐다보면서 현등사를 10:40 출발하여 정상인 만경대에 2시간 20분만에 올라서니 옛날 내가 20년전에 와 봤던 표지석은 없어지고 새로운 큼직하게 만들어진 “雲嶽山毘盧峯 해발 937.5m 가평군”이라고 쓴 표지석을 보니 감개무량하였다. 인터넷상에는 운악산 높이를 935.5m라고 기록되어 있어 약간 차이가 생긴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코스는 여간 힘들지 않았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잠시 쉬였다가 하산길이 시작되였다. 위험하니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자는 김재곤교우의 말을 듣지 않고 정우종교우와 함께 위험하더라도 내가 책임질 것이니 반대코스로 가자고 하여 내려오니 이게 웬일인가? 너무도 위험한 아슬 아슬한 험한 하산길이였다. 옛날에 있었던 로프(자일)줄도 없어지고 쇠사다리도 없어져 지나는 길에 보니 쇠사다리가 옛날 형태로 철거되지 않고 계단 옆 바위에 그대로 남겨 놓여져 있음을 볼 때 반갑기도 하였지만 격세지감이 있었다. 정우종씨에게도 저 쇠사다리를 보라고 알려주기도 하였다. 과거에는 이곳에 로푸줄과 쇠사다리길이 사람 하나 통과할 좁은 시설로 설치되어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산행객이 많아 등산객과 하산객이 범벅이 되어 교통체증을 심하게 일으켰던 지점이기도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가급적 토요일과 공휴일에는 운악산 산행을 기피하였는데 지금도 그런줄 알고 왔는데, 그러던 이곳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내려오는 길에는 나무계단과 쇠로 만든 손잡이와 발을 디디는 쇠받침이 수없이 설치되여 안전산행에 많은 시설을 해놓아 전혀 교통체증이 없어 졌음을 알고 이 순간 시대의 변화가 이렇게 많이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여타 구간은 올라오던 길보다는 너무 험하여 자칫하면 사고 나기 십중팔구였다. 이렇게 험한 길이라 많은 등산객들이 이쪽을 기피하는 이유를 알 수는 있었으나 산행인 으로서는 이 코스를 기피하고 왔던 길로 다시 하산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므로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려오는 코스는 평풍바위 미륵바위 눈썹바위 순으로 내려오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경치는 정말 절경이 였다. 그렇게도 아름 다울수 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구간이 너무 험하여 스틱은 접어서 배낭에 넣고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여 나려오다 보니 능선을 따라 하산함이 맞는 것인데 계곡으로 길을 잘못 내려오는 바람에 낙엽이 쌓인 급경사 길인지라 많은 고생을 하며 조심 조심 미끄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대가를 치르기도 하였다. 김재곤 교우는 성질이 급하여 혼자 먼저 내려가 우리와 헤여저 나중에 주차장에서 만났다. 그러나 무사고로 일행이 하산하여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였고 참으로 보람찬 일이였다. 김재곤씨와 정우종씨도 아주 흡족한 산행 이였다고 좋아 하였다. 군 당국은 산행길이 갈라지는 지점에는 초행자들을 위하여 반드시 안내판을 더 설치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도 하였다.

 아침에 떠났던 장소에 3시 55분에 도착하니 장장 왕복 6시간 36분이 소요되였음을 알고 내가 힘은 무척 들었지만 이것을 무사히 해냈구나 하고 나 자신이 놀라기도 하였다. 내가 아마도 1시간 이상은 느리게 걸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김재곤씨와 정우종씨만이라면 아마도 5시간 내지 5시간 반이면 충분하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주차장에서 4시 버스에 몸을 싣고 오다가 김재곤씨와 정우종씨는 구리역에서 전철로 간다고 내리고 나는 청량리역 버스 종점까지 와서 1호선 전철을 갈아타고 집에 오니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저녁 7시에 도착 하였으니 장장 13시간을 산행에 투입한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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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회 염종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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