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만세고개와 2일간의 해방

안성문화원 안성3·1운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홍렬

안성 만세고개와 2일간의 해방

 

안성문화원 안성 31운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홍 렬

안성 만세고개는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매우 뼈저린 역사의 현장이다.

1910년대 한국은 암울한 시기를 맞이한 적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정한론에 의하여 한국은 일제의 무력침탈을 당하여 을사 보호조약이라 일컫는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제가 하자는 대로 끌려가야만했다. 드디어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함에 따라 강압 정치가 시작되었고 한국인은 무력 앞에 굴복하게 되었으며 온갖 탄압과 착취, 박탈 등 민족 말살의 위기를 당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살아 갈 수 없을 만큼 암흑 상태를 맞아 신음하게 되었고, 견디다 못하여 만주나 북간도 같은 곳으로 이민을 떠나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 없는 설움 속에서 불쌍한 민족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었다. 정치가들과 지도자들도 해외로 망명을 떠나 해외에서 구국운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특유의 끈질긴 민족성과 인내력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저항정신을 발휘하여 191931일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울 파고다공원에서부터 태극기의 물결은 봇물처럼 터져 전국 방방곡곡을 휩쓸어 나갔으며 일제의 총 칼도 두려워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저항하기를 두 달 이상을 계속 함으로써 전 세계에 알리는 위대한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써 세계 열강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의 독립을 돕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인들은 더욱 더 민족 결집을 강화 시키게 된 민족 운동 이었다. 한국의 3 1 독립 운동은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독립 운동이며 자랑스러운 민족 운동이다.

 191931일 이후 안성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서 읍내 면을 비롯하여 죽산면, 일죽면, 삼죽면, 양성면, 원곡면 등에서 면민들이 처음에는 2~3명씩 태극기를 들고 동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불렀는데 차츰차츰 숫자가 늘어나서 나중에는 수 십 명, 수 백 명씩 규모가 커졌으며 장날에는 2, 3천명도 넘게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놀란 일제는 진압을 하기 위해 발포 명령으로 시위 현장에서 희생자를 내게 되었으며 무력 충돌로 인하여 많은 부상자가 속출하였고 체포되어 감옥에 가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게 되었다. 이렇게 안성 3 1 운동은 어느 지방보다도 격렬하게 전개하여 특히 원곡양성3 1 운동은 전국 3대 항쟁 지역으로 규정될 만큼 격렬한 독립운동이었다. 그 당시 현장 순국 25명을 비롯하여 361명이 체포되어 일제에 의해서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사망하신 애국선열들을 오늘날 만세고개에 건립한 안성 3 1 운동 기념관구내 광복사(사당)2백 삼십여 분의 위패를 모셔 놓고 매년 41일에 참배를 올린다.

 이와 같이 안성에서는 큰 사건이 많이 발생한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여겨진다. 안성은 역사적으로 볼 때 삼국시대부터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서 교통의 중심지요, 군사적 요충지이므로 정치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안성은 조선시대에 전국 3대 시장으로 등장하여 일제의 경제 침탈의 표적이 되었던 것 같다. 또 안성은 외세의 침입을 자주 입게 되므로 안성 인들은 외세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지역 사람들 보다 강하여 자주 정신이 강한 점이 저항운동을 크게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래 민족의 결집력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행정단위를 통합하여 1914년에 양성군, 안성군, 죽산군을 통합하여 안성군 하나로 만든 것에 대한 양성 주민과 죽산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도 분개한 것으로 생각 된다.

안성 만세고개는 안성시 원곡면에 소재하는데, 원래는 성은고개라 하였으며 1991년 건설부 고시 령으로 개칭하여 만세고개 라고 명명하고, 2002년도에 경기도와 안성시가 이곳 만세 고개에다 안성 3 1 운동 기념관을 건립하고 매년 41일과 2일에 3 1절 기념식과 독립 만세 운동재현 행사를 거행하고 있으며 이 역사의 현장을 안성 시민은 물론 인근 주민 및 대내외 모든 국민들에게 전시물을 관람하도록 하고 있으며 교육의 장, 역사 체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만세 고개의 유래는 19193 1 운동의 여파로 안성군 원곡면 주민 1천여 명이 41일 밤 이 고개에 모여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일제 통치기관이 있는 양성으로 가서 일제를 모조리 몰아내기로 결의하고, 주민 모두가 합심하여 만세를 부르며 양성면으로 넘어간 것을 기념하고, 양성에 가서 양성주민 1천여 명과 합세하여 연합 시위를 벌여 양성면에 소재하는 면사무소, 우체국, 경찰주재소, 일본인 상점, 일본인 가옥 등을 파괴하고 방화 및 축출하고 일제를 내쫓아 이 지역 일대를 “ 2일간 해방 지역을 만들었던 것을 기념하여 명명한 것이다. 또 같은 날 밤 동시에 양성면 주민들도 1천여 명 이상이 양성면에 집결하여 독립만세 운동을 격렬하게 전개한 것을 기념하여 양성면 동항리 네거리 부근에 독립운동 항쟁지”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안성의 만세 고개와 안성 3 1 운동 기념관은 앞으로도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선열들의 빛나는 애국정신을 본받도록 하는 교육의 장, 역사의 현장으로 더욱 발전 시켜야 할 것이다. 금년에 안성 3 1 운동 95주년을 맞은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망언이나 역사 왜곡 등을 소홀하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며 단호히 응징하고 다시 한 번 각성하며 대응 자세를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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