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지표 '유지자사경성'

서울특별시의회 김기성 의장

 인간은 여러 가지 일로 내적 변화를 겪는다. 그 변화는 또 한 생애를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한 줄의 글에서 느낀 바가 있어 이를 삶의 지표로 삼아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경우도 많다.

 이제 얼마 있으면 경인년(庚寅年) 첫 새벽을 알리는 함성이 보신각 타종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그 소리는 경제 침체로 어느 때보다 고단했던 기축년(庚寅年)을 뒤로하고 경인년 신 새벽을 향한 기대와 희망의 메아리라 생각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필자의 삶의 지표인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이라는 성어가 떠오른다. '뜻을 지닌 사람은 어떤 난관에 봉착해도 마음먹은 일을 성취하고야 만다.'는 가르침이다.

 조선 21대 왕인 영조가 청계천 대역사를 마치고 광통교에 서서 세손인 정조에게 그 뜻을 전했다고 한다. 당시 한양은 치수(治水)시설이 열악해 우기에 비가 쏟아지면 청계천이 범람했다. 백성은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재산과 가족을 잃었지만 역대 왕들은 그때마다 뗏장이나 버드나무로 물길을 막는 등 임시방편적 대책으로만 대응할 뿐이었다.

 영조는 청계천 범람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심해 전국에서 21만여 명의 장정을 동원해 두 달여 동안 준설과 천(川) 양쪽에 석축을 쌓는 청계천 정비를 완수했다. 백성들은 그제야 청계천 범람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 신하들은 영조의 큰 뜻인 위민(爲民)정신을 받들기 위해 '유지자사경성'의 글귀를 돌에 새겨 비(碑)를 세웠다. 물론 영조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엇갈린다. 사도세자를 멸(滅)했다는 비판과 정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는 칭송을 함께 받고 있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그를 대왕으로 호칭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필자는 영조의 가르침이 담긴 이 짧은 글과 교훈을 경인년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선 들려주고 싶다. 우리 모두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에 젖기보다는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2010년 경인년 새해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계획과 뜻을 세워 다가올 한 해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뜻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지자사경성'을 삶의 지표로 삼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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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비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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