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사 정림 큰스님

‘우란분절 제례’ 와 ‘효도정신 실천’ 설법

“지옥문이 열린다” 는 백중은 불교 5대 명절 중 부처님 오신날 다음의 큰 명절로 우란분절(盂갿盆癤)이라고 도한다.

 17일 영평사를 비롯해 안성관내 모든 사찰에서 백중 제례식을가졌다. 정림 큰 스님은 “부처님께서는 우란분제를 올리는 불 자들에게 무언가 일러주고 사랑의 큰 은혜를 갖는다는 마음으로 우란분제를 준비하고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그에 따라 목건련의 효행을 본받아 음력 칠월 보름이 되면 금생의 선망 부모와 전 생의 부모형제를 위한 천도제를 봉행한다” 며 “세인에게 가장 깊은 인연인 부모 자식의 인연을 누구나 거역 할 수 없으므로 불자들은 백중기도를 더욱 정성스럽게 봉행해 효도의 정신을 실천 해줄 것” 을 설법했다.

 영평사 한영애 법사는 우란분은 지옥과 악귀 등의 악도에서 거꾸로 매달려 살아야 하는 영가육체 밖에 따로 있다는 정신적 실체들을 그 고통에서 구해주고 해방시켜준다는 뜻입니다면서 즉 우란분절에는 사찰에서 그릇되고 고통 받는 영가들을 천도해 주고 있으며 또한 스님들이 3개월간의 안거를 마치는 하안거 해제일입니다이 음력 715일에 백가지 종류의 음식을 마련해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혼백을 구제하는 날이라 하여 백종(百種)이라고도 불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한영애 법사는 백중에 모시는 우란분절에 대한 유래에 대해 부처님의 10 대 제자 중에 가장 신통력이 뛰어난 목건련의 효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왕사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9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업을 물려받아 먼 길로 장삿길을 떠나기 전에 부친이 남긴 재산을 삼등분하여 홀어머니의 생활비, 자신의 장사 밑천, 스님들에게 대중공양으로 똑같이 나누었고, 아들이 떠나자 청제부인은 스님들께 공양은 올리지 않고 음주와 가무, 향락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큰돈을 벌은 목건련은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과 스님들의 기도의 원력인줄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을 어귀에 도착하였을 때 어머니의 방탕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건련이 집에 와서 어머니인 청제부인에게 소문의 사실 여부를 묻자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오늘부터 7일 안에 죽어 도현(거꾸로 매달림)의 고통을 면치 못할 것이다며 말했으나 며칠 후 어머니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즉사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목건련은 죽은 어머니의 간 곳을 알고 천도하기 위하여 수행하여 도반인 사리불과 함께 석가모니부처님을 친견하여 제자가 되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신통제일의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통력으로 거꾸로 매달린 채 고통을 시달리는 어머니를 보았고, 업장이 두터운 어머니를 천도하기 위해 정진하는 스님들의 위신력을 얻어야만 가능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안거 해제일인 715일에 시방의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기를 권하셨습니다. 해제일에는 선을 닦던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스로 범한 허물이나 깨달은 바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점검 받는 날로서 수행의 에너지가 참으로 대단한 날입니다.

 이날 과일과 음식을 공양하여 정성을 들이면 부모는 물론 친족들도 삼악도를 면하고 천상에 태어나고 병고가 없이 장수 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건련은 부처님 말씀대로 우란분재를 시행하여 어머니가 1 겁을 더 받아야 할 과보를 벗고 천상에 태어나 복을 누리게 되었답니다고 백중의 의미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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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비어 있었습니다’
“안성시 고삼면 쌍지리 느티골 인근에서 지난 10일 오전 7시 40분께 24톤 탱크로리 한 대가 도로 붕괴와 함께 하천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 차량을 운전하던 청년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닥터헬기로 긴급 이송됐다. 그는 과거 본인과 함께 독일 바이오가스 축산시설을 견학하며 안성 축산의 미래를 이야기했던, 누구보다 성실한 청년 축산인이었다.” 최호섭 시의회운영위원장은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단순히 ‘도로가 무너졌다’는 충격을 받았는데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다면 큰 공포와 분노, 그리고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고 덧붙여 말했다. “사고 당시 도로는 외관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 속은 이미 텅 비어 있었으며, 폭 2m 남짓한 하천변 콘크리트 농로는 기초 보강 없이 흙 위에 콘크리트 판을 얹은 단순 구조였고, 하중 분산이나 침식 저감 설계는 전무한 상태로 그야말로 ‘도로의 탈을 쓴 위험지대’였던 셈이다. 이번 사고는 상하수도관 누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도로 구조에 대한 사전 검토 부족, 부적절한 시공, 사후 점검 부재 등 복합적인 관리책임상의 문제가 겹쳐진 결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형사적 책임이나 행정상 과실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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