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행복의 열쇠

정지웅

행복의 열쇠

 

시 인·수 필 가

코오롱스포츠 대표 정지웅

 

 인간의 행복의 위해서 어떤 진리, 어떤 지혜, 어떤 감정을 가르쳐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무엇이냐, 어떤 철학을 가르쳐 주어야만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있느냐,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지혜로써 나는 세 가지의 덕()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희망(希望)이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희망은 생명에 가장 긴요한 정신의 비타민이다. 희망은 용기의 어머니요, 노력의 원동력이다. 희망에 가득찬 사람과 절망에 빠진 사람을 비교해 보라. ()과 사()만큼 차이가 있다. 희망은 녹색의 빛이요, 절망은 흑색의 어둠이다. 희망에 넘치는 사람을 보라 눈에는 아침이슬처럼 맑은 정기(精氣)가 빛나고, 얼굴에는 발랄한 생기가 약동하고 걸음걸이에는 씩씩한 활기가 넘치고,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하고 생활에는 자신감이 가득 찬다.

 방안에 등불이 꺼지면 캄캄해지듯이 희망의 등불이 꺼지면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생활은 암흑으로 변한다. 희망은 인내(忍耐)의 어머니다. 중병에 걸린 환자는 나의 병이 나으리라는 밝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병의 고통과 싸우고 힘든 수술을 견뎌내고, 쓰디쓴 약도 매일 먹는다. 젊은 학생은 성공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밤을 밝혀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고난과 싸우고, 역경에 도전을 하고, 힘든 세월을 이겨낸다. 전쟁에 나간 자식이 반드시 살아 돌아오리라는 큰 희망이 있기 때문에 늙은 어머니는 인내 속에서 긴 세월을 꿋꿋이 참고 기다린다. 절해고도(絶海孤島)에 표류한 조난자도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면서 구조선이 오기를 학수고대 한다.

 희망은 인내를 낳, 용기를 낳고, 노력을 낳는다. 내일 지상에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의지와 용기의 원천이 무엇이냐, 희망이다. 절망(絶望)은 죽음에 이루는 병이요, 희망은 생명에 도달하는 힘이다. 내 마음의 밭에 희망의 푸른 나무를 심어라, 네 생활의 방에 발랄한 미소를 지어라, 네 가슴속에 희망의 굳은 의지를 품어라 인간은 절망에 빠지면 노력을 포기하고, 승리를 향한 의지를 버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을 중지한다. 절망은 체념을 낳고, 무기력을 낳고, 암담을 낳는다.

 희망은 우리에게 전진을 명령한다. 희망은 우리에게 활기를 준다. 희망은 우리에게 미래를 약속한다. 희망은 우리에게 꿈을 품게 한다. 희망은 인간의 가장 충실한 벗이다. 일순간 후에 죽을 중병 환자도 죽는 순간까지 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인간을 마지막까지 지겨주며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오직 희망뿐이다. 희망은 인간의 최후의 벗이다. 절망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희망은 우리에게 항상 이렇게 일러준다. 산다는 것은 희망을 갖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뜻을 세우는 것이요, 목표를 확립하는 것이요, 비전을 갖는 것이다.

 ‘희망은 강한 용기(勇氣), 새로운 의지다루터의 명언이다. 희망은 우리에게 강한 용기를 준다.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는 새로운 의지를 발동케한다. 산다는 것은 희망을 실현하려는 노력이요, 뜻을 이루려는 몸부림이요, 목표를 달성하려는 분투노력이다.

 절망의 힘은 크다. 그러나 희망은 힘은 더욱 크다. 우리는 절망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한다. 우리는 희망의 주인이 되어야한다. 희망은 태양과 같다. 희망은 태양처럼 우리에게 밝은 빛을 주고, 뜨거운 정열을 주고, 강한 힘을 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의 철학이 아니고, 희망의 철학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고, 희망의 언어다.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절망의 노래가 아니고, 희망의 노래다. 우리는 항상 밝고, 뜨겁고, 힘찬 태양을 가슴에 지니고 살아야 한다. 희망은 행복의 문을 여는 소중한 열쇠의 하나다.

 둘째 성실(誠實)이다. 성실은 행복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정성을 쏟는 것이요, 최선을 다하는 것이요,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요, 전력투구의 정열을 쏟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활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날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의 의무와 직분을 갖는다. 일은 소중하고, 의무는 신성하고, 직분은 존귀하다. 우리는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의무와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슨 일이나 최고(最高)는 못되더라도 최선은 다해야한다. 일의 태만과 의무의 포기와 직분의 불성실은 인간으로써 부끄러운 일이다.

 무위도식(無爲徒食)은 인간의 수치요, 허송세월은 인간의 부끄러움이요, 일이 없는 인생은 어두운 지옥이다. 인생의 사전에 제일 첫 페이지에 대문자로 써야 할 가장 중요한 단어는 성실 이라는 말이다성실은 도덕의 뿌리요, 정신의 기둥이요, 생활의 근간이요, 인생의 대본(大本)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나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큰일이건 작은일 이건, 남의 일이건, 남이 보건말건 네가 하는 일은 정성껏 하여라. 이것은 인간의 행동과 생활의 대원칙(大原則)이다.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 불성실은 생명이 없다. 되는대로하면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성실 속에 빛이 있고, 힘이 있고, 생명이 있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적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용기를 잃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성실과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을 항상 속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잠시 동안 속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나 원칙대로 하고, 순리대로 하고, 정도에 맞게 해야 한다. 그와 반대로 무슨 일이나 원칙과 순리와 정도를 무시하고, 거짓과 속임수와 부정과 비리(非理)대로하면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공자는 주충신(主忠信)’ 이라 하였다. 충신을 근본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충신은 생각이나 말, 행동에 거짓이 없고 참된 것이다. 진실무망(眞實無妄)한 것이다. ()은 하늘의 길이요, 참을 행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동양의 선철(先哲)은 불성무물(不誠無物)이라고 하였다. 성실성이 없으면 아무 일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자기가 하는 일에 혼을 쏟고, 생명을 연소시키고, 자아를 몰입하고, 심혈을 바쳐야 한다.

 물아일여주객일체(物我一如主客一體)의 순수무잡(純粹無雜)의 정신으로 자기 일에 성심성의를 다해야한다. 우리는 지성일관(至誠一貫)의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 마음, 그런 자세로 만든 물건만이 진품이 되고, 명곡이 된다. 몰입(沒入)속에 미()가 있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리하면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묵시록(黙示錄)>에 나오는 명언이다. 무슨 일이나 정성을 다 하는 사람이 생명의 면류관을 쓸 수 있다. 참과 성실로 돌아가자 그것은 행복의 문을 여는 비결의 열쇠다.

 마지막으로 감사(感謝). 감사하는 것을 배워라 우리는 감사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다. 감사의 나무에 기쁨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열린다. 행복의 여신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불만이 가득찬 곳에는 결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감사는 행복의 여신이사는 평화로운 집이다.

 감사는 인간의 고급감정(高級感情)이다. 고마워 한다는 것은 높은 차원의 감정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맨 먼저 마음을 비워야한다. 세상에 마음을 비우는 일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나의 마음속에 교만이 가득차고, 허영심이 가득차고, 불평불만이 가득차고, 열등감이 가득차고, 좌절감이 가득찰때 우리는 절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그릇에 물건을 담으려면 먼저 그 그릇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러한 악과 독을 깨끗이 없애야만 감사의 감정을 담을 수가 있다. 먼저 가슴을 비워라. 우리의 마음이 청정한 마음, 겸허한 마음이 될 때 비로서 감사하는 심정을 가질 수 있다. 청정심(淸淨心), 겸허심(謙虛心) 이것이 감사를 느낄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감사하기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는 빈손, 빈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손에 연필 한 자루, 종이 한 장도 못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오늘날 내가 이만큼된 것은 많은 사람들의 헤아릴 수 없는 수고와 은혜와 희생과 노력의 산물이요, 덕택이다. 나에게 이 존귀한 목숨을 주신 조물주에게 먼저 감사해야 한다.

 나의 생명을 키우고, 길러준 천지자연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 하늘과 땅과 공기와 산과 물과 나무와 화초와 오곡백과에 대하여 감사해야한다. 나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신 부모님과 가족에 감사해야 한다. 나를 가르쳐주신 많은 스승과 훌륭한 책과 그 책을 쓴 옛날의 위대한 선생님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나를 격려하고 도와준 많은 친구들과 직장의 선후배에게 감사해야 한다. 나에게 의식주의 재료를 제공해준 무수한 중생과 동포와 나라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갖는 데서부터 감사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나에게 주어진 이 생명과 건강과 재능과 기회와 일과 재산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개인의식과 권리사상과 자유 관념과 물질주의와 향락의식이 강한 현대인은 감사의 감각이 마비되고 고마워하는 심정이 희미해졌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회화 속에 감사어나 감사의 표정이 자꾸만 적어져간다. 이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감사를 망각한 종교, 감사를 잃어버린 철학, 감사를 모르는 문학은 결코 생명적인 것이 못되고, 진실한 것이 못된다. 무엇을 달라고 하나님께 희구하는 기도보다도 풍성하게 주어서 고맙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가 더 중요하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의 가슴에는 신이 계시지 않는다. 행복은 감사의 산물이다. 우리의 선인들은 일미칠근(一米七斤)’ 이라고 하였다. 쌀 한 톨이 우리 밥상에 오르려면 농부가 적어도 일곱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고 하였다.

 쌀알은 소나기처럼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요, 샘물처럼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 여름 그리고 가을 농부들이 일곱근의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일한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는 기름 한 방울, 쌀알 한 톨, 석탄한줌,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 만든 사람의 수고와 정성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아껴써야 한다.

 우리는 결코 나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 (), () 3(三才)의 한량없는 은혜와 공덕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마음이 평화롭고, 얼굴이 부드럽고, 말이 아름답다.

 행복은 감사의 집에 산다. 감사의 나무에 행복의 꽃이 핀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다.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철학과 어떤 지혜와 어떤 덕과 어떤 진리와 어떤 감정을 배워야 하는가? 나는 세 가지 덕을 강조하였다. 희망과 성실과 감사 이 세 가지 지혜(智慧)가 행복의 문을 여는 진정 중요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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