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서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 함성 재현

2일간 희망 기념일·나라사랑 체험 박람회도 함께 진행

 안성시문화원(원장 양장평)은 광복 70주년과 4·1독립만세항쟁을 기념하는 ‘2일간의 해방’ 행사를 4월 2일 안성 3·1 운동기념관에서 거행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 3대 실력 항쟁지로 평가받고 있는 양성·원곡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재연해 ‘2일간의 해방’ 을 이루어낸 순국선열들의 얼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안성시, 국가보훈처, 광복회 안성시지회, 안성 3·1 독립운동신양회 후원으로 2천여 명의 시민과 외지 참배객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행사는 오전 9시 30분 만세고개 걷기 행진을 시작으로 4·1독립만세운동 기념식, 2 일간의 해방 경과보고,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운동 재현공연, 광복사, 헌화 등의 1부 행사와 공연, 체험행사, 백일장 대회 등 2부 행사로 진행됐다.

 황은성 안성시장과 유광철 안성시의회의장, 이재익 수원보훈청장은 기념사와 축사를 통해 “오늘 행사는 일제를 몰아내고 2일간 해방을 이루어낸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얼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모였다” 라면서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의식과 애국심을 함양시켜 줄 수 있는 의미 깊은 행사가 될 것” 임을 강조하고 “앞으로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를 당부했다.

 이보다 앞서 양장평 문화원장은 2일간의 해방 경과보고에서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3·1운동이 발발한지 열흘 후인 3월 11일 양성 공립보통학교에서 보성전문학교 학생인 남진우가 주도해 조회시간에 학생들에게 만세를 부르게 했고, 양성 학생들의 만세운동이 원곡면에서의 시위운동으로 이어졌고, 3월 28일에는 가까운 동리와 칠곡리 등이 나서 외가천리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4월1일 산발적으로 시위가 계속되었 다가 원곡·양성 엽합시위로 확산되어 밤 8시 양성면 원곡면 시위대가 만세고개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해 주재소를 불태웠고 또 우편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고 서류, 집기, 일장기를 불태워 이 지역을 이틀간 해방시켰다” 라면서 “이제 96년전 우리민족이 일제에 항거해 독립항쟁을 일으키고, 2일간의 해방을 맞이했던 그 감격 과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정신을 가져줄 것” 을 요망했다.

 특히 이날 체험행사에는 안성3·1운동기념관을 비롯해 전국 10개 독립운동 기념관이 참여해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시민과 청소년들에게 독립운동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마련되어 큰 호응을 받았다.

 행사는 유공자에 대한 시상과 안성3·1독립운동 선양회 임경호 회장의 만세삼창으로 안성4·1만세 항쟁기념행사의 의미와 정신을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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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비어 있었습니다’
“안성시 고삼면 쌍지리 느티골 인근에서 지난 10일 오전 7시 40분께 24톤 탱크로리 한 대가 도로 붕괴와 함께 하천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 차량을 운전하던 청년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닥터헬기로 긴급 이송됐다. 그는 과거 본인과 함께 독일 바이오가스 축산시설을 견학하며 안성 축산의 미래를 이야기했던, 누구보다 성실한 청년 축산인이었다.” 최호섭 시의회운영위원장은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단순히 ‘도로가 무너졌다’는 충격을 받았는데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다면 큰 공포와 분노, 그리고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고 덧붙여 말했다. “사고 당시 도로는 외관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 속은 이미 텅 비어 있었으며, 폭 2m 남짓한 하천변 콘크리트 농로는 기초 보강 없이 흙 위에 콘크리트 판을 얹은 단순 구조였고, 하중 분산이나 침식 저감 설계는 전무한 상태로 그야말로 ‘도로의 탈을 쓴 위험지대’였던 셈이다. 이번 사고는 상하수도관 누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도로 구조에 대한 사전 검토 부족, 부적절한 시공, 사후 점검 부재 등 복합적인 관리책임상의 문제가 겹쳐진 결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형사적 책임이나 행정상 과실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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