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안성군수 조성헌

 

전 안성군수 조 성 헌

 

 매미소리 만큼이나 여름이 깊다. 등불 아래의 사색보다는 쏟아지는 일광 아래로 달려 나가, 우주와 자연이 들려주는 지혜 속으로 풍덩 뛰어 들기에 맞춤한 시간이다. 계절을 핑계 삼아 달려간 곳은 산이다. 남양주에 있는 운길산(雲吉山)이다. 언어의 무력함을 절감케 하는 풍경 속, 찡하니 맑은 공기와 길가의 야생화 꽃무리 사이를 걷고 또 걷는다.

 육산(肉山)은 흙으로 뒤덮여 있는 산을 가리킨다. 육산은 뱃살도 나오고 히프(hip)도 커서 먹을 것이 푸짐하다. 반대로 골산(骨山)은 바위가 험하게 솟은 산이다. 이름에 악()자가 들어간 산은 골산에 해당한다. 군살은 다 빠진 산이다. “운길산은 육산에 해당된다.

 중부고속도로로 하남 만남의 광장에서 버스(bus)가 요금소를 빠져 나온다. 꼬리를 물고 내달리는 자동차 행렬이 넘치는 시내를 벗어나 유유히 흐르는 한강변을 달리니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덕소 강변과 팔당 유원지, 팔당댐, 양수대교와 철교에 이르기까지, 수려하고 빼어난 경관이 원색의 하이킹(hiking) 행렬과 조화를 이룬다. 북한강변을 따라 달리던 버스는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조안면 보건지소옆에 섰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40거리다.

 등산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양옆으로 푸른 잣나무가 비취(翡翠)빛 하늘에 마음껏 뻗었다. “운길산 수종사(雲吉山, 水鐘寺)” 라 쓰인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불상이 우리를 맞는다.

 시멘트(cement)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수종사까지 연결되는 찻길을 버리고, 곧바로 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속에는 소나무, 잣나무, 밤나무, 굴참나무 등이 빽빽이 들어섰다. 여기에 풀벌레들의 합창이 울리고 제법 널찍한 등산로가 세파에 찌든 속인들의 발걸음이 잦았음을 알려준다.

 산길을 오른 지 40여분,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수령 530년이 넘었다는 키가 40m, 둘레 7m로 세조(世祖)가 수종사 중창을 마치고 기념으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요즘 말로하면 세조의 기념식수다. 수종사에 있는 탑도 이보다 훨씬 늦게 세워진 것으로 보면 이절의 역사를 가장 오래 지켜오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은행나무 두 그루이다.

 은행나무에서 몇 발자국 가면 불이문(不二門)”이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요, ()과 사(), ()과 공() 등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드러내는 문이다. 즉 불이(不二)의 진리로서 모든 번뇌는 벗어 버리고 해탈을 이루어 부처가 된다는 뜻, 그래서 해탈문 이라고도 부르는 것이 이 불이문이다.

 대웅보전, 다보탑, 팔각오층석탑(유형문화재, 22) 부도(유형문화재 제157)등이 운길산의 상서로운 기운을 듬뿍 담고서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범종 앞에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니 조선 초기에 육조판서를 두루 지낸 서거정이 수종사를 동방사찰 중 제일 전망이라며 격찬하고 지은 시 구절이 떠오른다.

 양수리 수종사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는 연기와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상방()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흰 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거나, 내 등원에 가서 참선이야기 하려하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 울게 하지 말아라!

 수종사 법당에서 들려오는 불경소리를 들으며 운길샘터에서 계단으로 된 가파른 등산로를 올랐다. 한참 오르니 쉼터가 나오고, 남양주 산림조합에서 설치한 알아두면 재미있는 산림상식입간판이 보인다.

 온 몸이 땀으로 목욕한 것 같아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능선길을 바짝 올려치니 조그마한 바위가 있고, 거기에 흰 색 페인트(paint)운길산 610m” 라 쓰여 있다. 드디어 정상에 이른 것이다.

 구리시와 의정부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봉산의 우람찬 바위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운길산은 북쪽과 동쪽에서 뻗어 내린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줄기가 서울 쪽으로 흐르도록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왼팔을 송촌리 쪽으로 구부리고, 오른팔을 예봉산 너머 팔달과 덕소 쪽을 가리킨다. 순경이 사거리에서 교통정리 하듯, 한강 물줄기가 흘려야 할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이 수도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강의 덕이 크다. 그런데 한강 줄기를 서울 쪽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바로 양수리 운길산인 것이다. 동남쪽으로 양수리가 보인다. 양수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다. 이곳은 여름철 아침이면,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마치 한쪽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해질녘에는 팔당호를 물들이다 강물 속으로 사라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정상에는 또한 북한강과 천마산, 축령산이 보인다. 구불구불 뻗어나간 능선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우측으로는 갑산, 좌측으로는 적갑산, 승원봉이 흘러내리고, 그 뒤로는 검단산이 겹쳐 보인다. 주능선 멀리 뒤로는 백운대와 인수봉이 아스라이 바라본다.

 잠시 머물다 봉우리들을 오르내리기를 1시간여, 새재에서 진중리로 연결되는 안부 사거리에 도달한다. 우리는 진중리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내려오는 임도는 관리되지 않아 그런지 넓은 도로에 가시나무와 갖가지 풀이 우거져 있다. 앞을 내다보니 중앙선을 달리는 열차가 덜커덕, 덜커덕 소리를 내며 철교를 건너고 있다.

 고개에서 10분정도 내려가 계곡을 만난다. 여기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10여분 더 내려가니 민가가 나온다. 운길산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웅장하지고 않지만, 지극히 소박하고 그윽한 분위기가 오히려 상서로움을 자아낸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보다는 한강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줌으로서 결과적으로 자신까지 아름다워지는 산! 이 운길산의 넉넉함이야말로 세상을 정화하는 텃밭이 아닐까?

 운길산을 다녀와서 느낀 소감은 등산로에 파리떼가 등반객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창피하게도 화장실이 제대로 없어서다. 등산객들이 산에서 실례를 해서는 안 되겠다만, 생리현상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국토의 80%가 산지이고, 산림물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관광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산에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알프스, 일본의 하코네 등 유명 산악 관광지가 많은 관광객을 끌어 들이면서도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왜 모르나! 정부와 지차제, 산림조합은 과감한 정책 전환과 시행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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