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추억에 남을 여행기> 나의 우리국토 답사기

재경안성산악회 최승숙 총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사계절이 뚜렷하며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 바쁜 일상에 치여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재경안성산악회 총무 직에 몸 담그면서 보게 되었다. 작년과 올해 2년에 걸쳐 한국의 동···북 끝 지점을 밟아보았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 울릉도 성인봉과 독도에 올라서다

 처음 여정으로 간 곳은 이광복 회장님 임기 4대 목표 중 하나였던 울릉도와 독도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여정이 취소되는 듯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묵호항에서 울릉도로 출항했다. 세종대왕도 날이 맑게 갠 날 동해에서 바라보았다던 울릉도. 배에서 바라본 울릉도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파도와 바람이 조각을 해놓은 섬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가득차지는 것만 같았다.

 울릉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독도를 향하는 뱃길에 올랐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나도 모르게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도착한 독도는 정말 푸르렀다. 우리를 반기듯 날씨도 좋아 바라던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행복했다. 특히, 동도에 있는 한반도 바위는 스스로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소리치고 있는 듯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독도가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둘째 날엔 울릉도 중앙에 있는 산, 성인봉을 올랐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같은 화산섬이기 때문에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지형과 특산식물들이 분포해있다. 그 때문인지 마치 외국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울릉도 자체로도 중요한 우리의 유산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푸른 하늘, 따스한 햇살 그리고 높게 솟아있는 나무들이 모든 고민을 잊게 해주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묵호항에 돌아오는 길 동해 바다에서 돌고래들이 우리를 환송하듯 춤을 추고 있었다. 또 와야지. 다짐했다. 뿌듯하고 너무도 감격스러웠던 23일이 울릉도의 해처럼 빨리도 저물었다.

2.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천안함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다

 최근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호국영령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고 있다.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엔 잊고 살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천안함을 찾았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로 향하는 길은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기상악화로 일정을 12일로 단축하는 바람에 백령도 근처의 섬인 소청도, 대청도는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때문인지 왠지 더 기대되는 마음이 있었다. 백령도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통일기원비였다. 저 멀리 북한 땅이 보이는데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는데 닿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졌다. 복잡한 감정을 숨기고 바라본 백령도는 천연기념물의 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곳곳이 신기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콩돌해변이었다. 콩처럼 작은 자갈들로 이루어져 있는 해변이었는데, 밟고 걷자니 마치 지압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해안이 1km정도 이어져 있는데 정말 마냥 걷고 싶었다. 콩돌해변보다 더 내 마음에 남는 곳이 있는데 바로 사곶해안이다. 그 광활한 해안에 나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듯했다. 이곳 또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길이 3km, 너비 100m 해안이 모두 아주 고운 모래사장으로 되어있다. 수심이 얕고 바닥이 단단해 한국전쟁 당시 비상착륙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 천연비행장이다. 콩돌해변과 다리 하나를 두고 떨어져있을 뿐인데 이렇게나 다른 모습이라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바다날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백령도를 보았지만 그래도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은 천안함 위령탑을 본 후부터였다. 천안함 46용사 한 사람 한 사람 다 기억 못하는 것이 참으로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이 고요하고도 광활한 바다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위령탑의 꺼지지 않는 불꽃은 영원히 그들의 국가에 대한 정신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새긴다는 의미라고 한다. 잊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

3.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정상에 서다.

 세 번째 여정은 제주도 한라산 등반이었다.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제주도 여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괜히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표가 잘못되는 바람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라산 등반한다는 생각에 챙겨왔던 얼음물 때문에 재검까지. 정신을 잃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 한라산 앞에 도착해있었다. 남편과 함께 등반을 몇 번 했지만 그 때는 작품사진을 찍느라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등반은 정말 등반을 하기 위한 등반이었기 때문에 조금 들뜬 마음으로 정상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한라산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높이에 따라 기후가 달라 산행에서 다양한 군집을 발견할 수 있다. 잎이 커다래서 햇빛을 모두 가려주는 활엽수림,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듯한 침엽수림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희귀식물까지 모두 볼 수 있다. 하지만 산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백록담에 오르겠다고 호언장담하셨던 이광복 회장님도 어느 샌가 지쳐 보이셨다. 반 이상 올랐을까. 이제는 백록담을 볼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 반 불안한 마음 반이 되었다. 5월에도 우박이 내려 쉽게 볼 수 없다는 백록담. 처음은 아니지만 마치 첫사랑을 보러 가는 듯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마침내 백록담에 다다랐을 때 그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장엄하고 근엄했다. 백록담(白鹿潭)은 흰 사슴이 이곳에서 떼를 지어서 놀면서 물을 마셨다는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까지 정화되는 곳.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는 본격적인 관광 시간을 가졌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승마였다. 우리 딸이 어렸을 때 같이 승마를 한 이후 처음이었는데 그 때와는 색다른 기분이었다. 가장 평화로운 곳에서의 맛있고 신선한 음식 그리고 색다른 경험. 이 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한 번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4.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접수하여 정기를 듬뿍 받다.

 이번 국토대장정의 마무리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었다. 한라산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했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바로 백두산이다. 멀리 다른 나라의 땅을 밟아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닿기도, 보기도 어려운 멀고도 먼 백두산을 향해 비행기에 올랐다.

 백두산 등반 코스는 여러 곳이 있지만 우리는 북파와 서파코스로 가기로 했다. 중국은 백두산을 관광지로 만들어서 모든 코스가 다 차를 이용해 진입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파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1442개의 계단이었다. 굳이 개수를 세려하지 않아도 계단 하나하나에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얼마나 고생했을지 정말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혼자서도 힘든 이 계단을 가마꾼들은 가마와 사람까지 이고 걸어가고 있었다. 정말 중국에서만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거의 사람 구경을 하다시피 걷자 어느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처음 보는 천지의 모습은 한라산의 백록담과 참 닮아있었다. 오래오래 눈에 담아두고 싶었지만 내일 또 볼 수 있겠지라고 스스로를 달래가며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등반은 북파 산문 코스였는데, 천문봉에서 내려 조금 걷자 바로 천지가 나왔다. 자욱한 안개가 끼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덕이 없으면 천지를 못 본다고 하던데, 다행히 필요한 덕은 쌓았나보다 했다. 전날 봤지만 또 새로운 모습이었다. 천지는 여전히 멋있었다. 천지에서 달문으로 흐르는 물이 68m의 절벽을 만나 낳은 장백폭포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여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물이 떨어지는 곳엔 눈이 남아있었다. 한 여름에도 지난겨울의 눈이 녹지 않는 다고 한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그 폭포수의 소리가 모든 것을 금방이라도 잡아먹는 듯 했다. 또 어떤 모습을 그려나갈지 더욱 기대가 되는 곳이다.

 마지막 날은 호랑이와 같이 용맹한 우리 민족의 기원, 고구려의 역사를 찾아 광개토 대왕릉비를 찾았다.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이 비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4면에 걸쳐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그 위세를 떨친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이 비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 설명이 되는 것 같이 웅장했다. 한편으론 우리의 유산이 다른 나라에서 관광지로 이용되며 훼손되어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압록강 너머로 북한 주민들이 보이자 더욱 더 현실이 서글펐다. 하지만 역사는 변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기에 용맹하고 맹렬했던 그 기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년에 걸친 우리의 국토대장정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모든 여행을 함께 한 좋은 사람들 재경 안성산악회 회원 분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모든 여정에 기꺼이 리더가 되어주셨던 이광복 명예회장님을 비롯해 모든 임원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의 여정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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